고독한 먹기행 (29) - 동대문구 용두동의 '와가리피순대'
좋은 글이 나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며 먹었으니 말이다.
'고독한 먹기행'을 집필하고 나서 자주 사용하게 된 앱이 지도 앱입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숨은 맛집은 없을까 살피는 재미가 있더군요. 그렇게 짬이 날 때면 침대에 누워 이동 예정인 곳 주변으로 식당을 클릭해 보는 재미를 느끼는 중의 필자인데, 그러던 중 눈길을 끈 메뉴가 있었습니다. 피순대. 피순대라니. 서울 생활을 하며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는지, 낯설기까지 하더군요.
스물아홉 번째 글이 되겠습니다.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피순대입니다. 신설동역 인근 용두동에 위치한 '와가리피순대'를 한 번 만나보도록 하시죠.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성북천을 따라 가는 길입니다. 필자의 연인이 순댓국을 찾는 일이 많아져 따로 체크해 뒀던 곳인데, 마침 기회가 되어 찾게 되었지요. 신설동역 3번 출구로 나와 '안암교'를 건너 좌회전 하면 나오는 곳인데요.
도착했으니 외관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죠. 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와가리'와 '피순대'라는 단어. 원래 서로 친한 단어들인 것처럼 입에 착착 감기더군요. 입구에서 상호를 여러 번 되뇐 필자입니다.
와가리. 로고를 보니 아시겠죠? 청계천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녀석. 왜가리의 방언입니다. 멀리서 보면 우스워 보여도 가까이로 비행하면 생각보다 큼직해, 화들짝 놀람을 안겨주기도 하는 녀석이죠. 필자는 '불광천'에서 조깅을 하다가도 자주 마주치는 녀석ㅇ비니다. 그나저나 20년도 더 넘은 집이었네요.
들어왔습니다. 내부도 한 번 살펴보시죠. 가게의 절반은 외부 테이블의 구조구요. 나머지 절반은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실내형 테이블의 구조입니다. 아마 과거엔 좌식이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줄줄이 피순대를 보고 싶기도 했고, 사람도 적어 필자는 주방이 가까운 실내 공간으로 들어왔습니다.
음, 메뉴는 생각보다 다양하더군요. 오소리(쫄깃한 식감의 돼지 위)를 주력으로 한 순댓국이 대표인가 봅니다. 필자도 좋아합니다. 서걱하게 씹히면서도 질근한 감도 있는 부위죠.
처음 온 집의 기본은 가장 상단부터라는 말이 있죠. 오소리 순대국과 순대 모듬(작은)을 소주 한 병과 함께 주문했습니다.
세 가지 종류의 김치와 함께 마늘장아찌가 먼저 등장했습니다.
특이했던 것이라면 정구지가 함께 들어간 오이김치. 순댓국집에서는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아주 푹 익어서 숨이 죽을 대로 죽었습니다.
내부도 좀 더 살펴봤는데요. 머릿고기 배합의 주문도 가능했군요. 그냥 주문했는데 크게 상관은 없었습니다. 머릿고기가 썰려 들어간 순댓국은 접하기가 쉽다 보니, 당시 오소리를 중심으로 만나려 했었거든요.
와가리와 오소리. 동물들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머릿고기 순댓국보단 비계가 들어가지 않아, 더 깔끔한 국물을 맛을 내는 편이죠. 필자가 더욱 선호하는 순댓국이기도 합니다.)
이어 다진 고추도 등장했네요. 다대기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방금 안내판에서도 볼 수 있듯, 얼큰을 기본 베이스로 한 순댓국입니다.
자, 본격적인 한 상입니다. 오소리 순댓국, 모듬 순대입니다. (더해 국물은 술국 비스무리하게 서비스로 하나가 더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반가웠던 건 저 피순대. 피순대를 보고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이 지나 어른이 돼서 만난 사촌 형 같기도 하네요.
왜 어린 시절이라고 하냐면,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지금은 사라진 새소망학원의 원장님이 피순대 한 알을 먹여준 기억이 있거든요. 순대 한 알이 어찌나 맛있던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순간인데,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따라 같이 간 천안 어딘가의 지역장에서 먹었던 막창순대도 생각이 났구요.
저 익숙하면서도 흔치 않은 모양새가 어린 시절 필자의 향수를 마구 자극하네요. 서울에서 만나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가 봅니다.
개인사인 추억은 여기까지로 하고. 구성은 바깥으로 두꺼운 막창 피순대, 얇은 일반 피순대, 그리고 오소리감투, 새끼보로 이루어진 모둠의 구성입니다.
전북과 충남을 주요 거점으로 활동 중인 음식이 피순대죠. 참 맛깔난 순대들이 많은데, 유독 당면순대가 많아 서운한 도시, 서울. 얼마나 이런 순대에 목이 말라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식사를 시작해 봤습니다. 음, 좋네요. 씹자마자 특유의 기분 좋은 노린 맛. 착착 감겨주는 맛이 입안에 퍼집니다. 서울에서 맛보니 감동의 밀물이 눈가에 차오르네요. 순댓국은 칼칼하면서 은은하게 깻잎의 향이 돕니다. 역시나, 머릿고기가 많이 들어간 고기 순대국보단 느끼한 부담이 덜한 깔끔한 맛.
피순대와 궁합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뻑뻑하게 소로 들어찬 피순대를 넘기는데 꽤나 도움을 주거든요. 하나는 묵직하고, 하나는 가벼운 느낌이 들어요.
오소리감투와 새끼보도 한 점씩 밀어넣는데, 뭐랄까. 단 두 가지의 메뉴인데 식감이 참 호화스럽단 느낌입니다. (오소리는 곱창 좋아하시는 분들은 거부감이 없을 텐데요. 저 새끼보는 부속을 즐기는 분이 아니라면 좀 난도가 있을 것입니다.)
단 한 알만으로 금세 포만감이 채워집니다. 맛있습니다. 서울에서 흔치 않은 집이 맛까지 있으니 참 좋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선지베이스에 갖은 야채가 섞인 일반적인 피순대로, 뭉클한 식감의 선지를 싫어하는 이들도 부담이 적을 거예요. 어린 시절엔 선지를 먹지 못했던 필자인데, 그럼에도 피순대는 잘 먹었으니 말이죠.
한 가지 팁으로 굳어 만들어진 선지는 조금만 식어도 금세 팍팍해지는 편인데요. 이럴 땐 순댓국에 담가 적셔두었다가 꺼내 먹는 것도 방법입니다. 참으로 그리웠던 식감과 맛입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먹으니 꽉 찬 순대의 속과 선지 특유의 맛으로 금세 배가 불러 물리게 되는 시간이 찾아왔는데요. 시간이 지나면 또 생각나겠죠.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습니다. 이곳 '와가리피순대'를 방문해 만나기 전까진 꽤나 텀이 길었지만, 다시 시작된 띠는 더 짧아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집을 알아두었으니,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찾아오겠지요.
늦은 저녁. 꽤나 훈훈해진 배와 함께 와가리를 한 번 더 마주하고 떠나는 필자입니다. 10년 만에 찾은 신설동인데, 참 기분 좋게 먹고 가네요.
아직 피순대를 접해보지 못한 이들이나, 서울에서 피순대의 향수가 떠오르는 이들에게 방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와가리피순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동대문구 용두동의 '와가리피순대'
- 영업시간 09:30 ~ 22:30 /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 주차는 불가하다. (가게 앞으로 4대가량 갓길 주차는 가능할 듯보이는데, 복불복.)
- 인근 공영주차장도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 대중교통 이용 시 신설동역 3번 출구에서 도보 8분가량 소요.
- 외부 테이블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내부 테이블 반반의 구조.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남녀 공용으로 기억.)
- 피순대 전문점, 즉 선지순대로 서울에선 굉장히 희귀한 편인데, 맛까지 있어 가치가 있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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