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24) - 충남 서산시 읍내동의 '진국집'
할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23년의 봄을 맞아 무작정 당일 서산으로 출발한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유기방가옥'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노란 수선화들도, 그곳에서 만난 수와진의 뉴 멤버(?)분도 인상적이었으나, 역시 충청도 출신인 필자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식이었죠. 먹기행의 소재를 듬뿍 얻을 수 있는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서산 여행 중 만난 곳입니다. 충남의 서산, 태안 일대의 대표 음식으로 게국지, 어리굴젓을 들 수가 있는데요. 정통 게국지 스타일로 시원하게 여행의 신호탄을 빵하고 쏴준 집입니다.(흔히 아시는 게국지가 아닐 테니, 눈 여겨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스물네 번째 먹기행, 서산의 '진국집'입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서산에서 유명하다는 노포 '진국집'. 그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골목 안쪽으로 작은 간판 보이시죠? 조금만 더 들어가면 좁은 골목에 위치한 '진국집'을 맞이할 수 있는데요.
먼저 가게 인근 주차는 조금 애매한 듯싶습니다. 보이는 차량 두 대 정도의 공간이 다인 듯하고, '진국집'은 더 안쪽에 있으니 사진 속 공간에 주차가 가능한지도 모르겠어요. 조금 쓸쓸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인근 상권으로 폐업한 점포들이 꽤나 많더군요. 때문인지 가게 앞으로 갓길 주차를 한 차량들이 많았는데, 필자도 폐점포 하나를 찾아 그 앞으로 주차를 해 두었습니다.
주말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인근 상권이 너무 풀이 죽은 모습이라, 제가 방문했을 땐 헛헛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게 앞까지 골목을 들어와 봤습니다. 토속음식점이라. 참 군더더기 없는 올바른 설명이라 생각되네요. 음식 맛을 보시면 이해하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고 보니 사진 속 멀리 작게 담긴 어느 어르신의 뒷짐진 모습. 이제와 보니 '진국집' 사장님 할머니셨습니다. 뒷모습도 필자의 외할머니와 닮으신 듯해, 기분 이 더 뭉클해지네요. 연배도 비슷하셔 보였고, 인상도 비슷했는데요.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분이었습니다.
자, 그렇게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창을 뚫고 나온 연통도 보이네요. 안에 난로가 있다는 것인데요.
확실히 옛 시골집 인근, 특히 읍내에서나 볼 법한 식당의 모습입니다.
상단의 녹이 슬어버린 간판도 인상적이네요. 이거 노포 간판은 명함도 못 내밀겠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맞은 간판. '진국집'과 함께 견뎌주느라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이제 들어가 보시죠.
내부입니다. 역시 연탄난로로 보이는 녀석이 가게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구요. 테이블식 공간.
좌식의 공간으로 구성된 방도 있습니다.
착석해 앉아 이젠 메뉴판을 살펴보시죠. 유의해서 확인해야 할 문구. 바로 상단의 안내 문구입니다.
'게국지는 하나의 김치 반찬입니다.'
아마 꽃게탕스러운 게국지(김치, 단호박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를 염두에 뒀을 이들을 위한 안내인가 봅니다. 요샌 연하게 끓여낸 게국이나 게찌개 등이 게국지로 불리거나 통용되는 점이 있는데요. 안내와도 같이 엄밀히 말하자면 게국지는 김치의 일종입니다. (짠지, 석박지, 오이지, 장아찌 등에서 '지'가 쓰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요약하자면 이곳은 흔히 알고, 널리 통용된 모양으로 파생된 게국지가 아닌, 최상위 개념의 정통 게국지를 선보이는 곳이죠.
가게에 들어오기 전 말씀드렸다시피 토속음식점이란 칭호가 어울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필자에겐 참 마음에 드는 요소더군요.
그렇게 게국지와 어리굴젓 소량이 포함된 게국지, 제육볶음, 어리굴젓 세트로 주문했습니다.
기다리는 중 벽면에 붙어 있는 서산 광광 지도도 가볍게 살펴봤습니다. 연식이 꽤나 된 지도여서인지 문화재 중심으로만 소개 중이네요. 집요한 필자는 상단의 도메인도 입력해 접속해 봤는데, 역시나 들어가지진 않는군요.
마찬가지로 벽면의 정보. 그렇다고 합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먼저 제육볶음입니다. 양푼이스러운 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간간히 파가 섞여 있는 것이 마음에 드는군요.
다음은 어리굴젓. 필자가 알던 것과 조금 달라 유심히 봤습니다. 상당히 묽더군요. 이런 굴젓은 처음입니다. 살짝 느낌이 옵니다. 이 집은 이 집만의 방식이 있구나, 하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한 상 차림입니다. 시장 쟁반이라 해야 할지, 그런 곳에 한가득 담겨 몇 번의 서빙으로 등장했군요. 살펴보시죠.
쟁반 가운데를 네 그릇의 뚝배기가 차지하고 있으니, 참 범상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먼저 보이는 건 호박찜이라 하기엔 국물이 많고 찝찌름한 것이 늙은호박젓국이 맞겠어요. 이어 구수한 들깨시락국, 필자에겐 익숙한 향기로 다가오는 맛이었습니다. 뒤에는 계란찜, 그리고 메인인 게국지입니다. 계란찜도 젓갈로 간을 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들깨시락국, 꽤나 강렬했어요. 추억이란 단어, 그 향기가 코를 스치더군요.
반찬들은 근접 사진이 없어 글로만 설명을 나열해 드리겠습니다.
상단 좌측부터 밴댕이볶음 같은데 정확하진 않습니다. 넙대대한 크기는 확실히 멸치는 아녀 보였고, 깍두기, 감자조림, 석박지스러운 무김치, 시금치나물, 하단으로는 김치, 파김치, 콩나물무침, 동치미의 구성입니다.
이후 본격적인 식사를 시작한 필자입니다.
음, 뭐랄까요. 이 집 음식들의 공통분모를 먼저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확실한 건 그냥, 일반적인 맛은 아니란 것입니다. 더 설명을 보태면 이 집, 저 집에서도 등장하는 보통의 흔한 맛이 아니라 이 집만의 방식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엔 몰랐던, 지금은 그리운, 그런 외할머니댁의 밥상과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죠.
물병에 든 보리차 맛에서도 그 향수가 통했던 필자입니다. 확실히 이 집만의 특유의 맛을 느낀 필자인데, 정말 좋습니다.
슴슴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선호하는 이들이 방문하면 참 좋겠네요. 시골 항머니 집 음식 맛의 향수도 갖고 있는 분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꽤나 손이 많이 갔던 밴댕이볶음도 첨부. 좋더군요.
참,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무척이나 자극시킨 '진국집'이었습니다.
북적이던 주말의 외할머니댁, 그곳의 아궁이, 나전칠기장, 쇠그릇에 담긴 찬들, 보리물까지. (심지어 충청도인 점까지도요.) 모두 그땐 몰랐는데, 지금은 그리워하는 요소들입니다. 이곳에 찾아오니 다시 자극받은 기분이네요.
무엇보다 왠지 모르게 익숙했던 할머니 사장님도 그랬고 말이죠.
음식 이상의 감성을 얻은, 참 의미 있는 방문이었습니다.
'진국집'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충남 서산시 읍내동의 '진국집'
- 영업시간 매일 08:30 ~ 21:00
- 주차는 가게 앞 2~3대 정도로 추정되나 정확하진 않음 (골목이 굉장히 협소해 주차장이라고는 할 수 없는 공간)
- 필자의 경우 이곳도 차량이 주차되어 있어, 진국집 주변 골목의 폐점포 앞 공간에 주차.
- 테이블식 구조와 좌식 공간이 혼재. (좌식 공간의 비중이 더욱 높음.)
- 화장실은 외부에 위치. (남녀 공용)
- 향토 음식들이 중심이 된 백반 정식집.
- 흔히 아는 꽃게탕스러운 게국지가 아닌, 김치 형태의 게국지. 게국지 명칭의 기원이 되는 토속음식을 제공 중임을 참고.
- 흡사 외할머니댁에서 할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는 기분이었다.
- 때문인지 작은 반찬 하나라도 일반 식당의 보편적인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음.
- 다만, 개성있는 음식들, 슴슴한 맛으로 인해, 이런 토속 음식을 즐기지 않는 이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음.
- 세월로 인해 할머니의 기력은 많이 쇠하신 듯 보였는데, 필자의 외할머니와 같이 따스하셨다.
'지방 편 > 충남 서산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남/서산시) 인생 만두를 만나다. ’향원만두’의 군만두와 찐만두 (1) | 2023.04.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