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114) - 은평구 증산동의 '도투리 샤브칼국수'
증산역 인근이 은평구의 맛집 불모지라 기술한 적이 있는데,
그 말 바로 취소다.
오늘은 새해 첫날 한 끼에 대한 음식을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그 주인공은 샤브샤브인데요. 평범한 샤브샤브였다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텐데, 도토리만두라는 것이 포함된다고 하니 이거 이야기가 달라지더군요. 이런 특징적인 특징을 참 좋아하는 필자기에, 얄팍스럽게도 도토리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새해와 참 잘 어울리는 한 끼겠다 화답한 필자였습니다.
만난 곳은 은평구 증산동에서였습니다.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는 이 조용한 동네에 상당한 내공을 자랑하는 도토리 기반의 샤브샤브집이 있었는데요. 은평구로 자리 잡자마자 가볍게 살펴보긴 했었는데, 왜 이제야 찾았나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결과만 미리 얘기하자면? 필자가 앞서 기술했던 은평 맛집 불모지 증산동이란 표현은 바로 취소입니다.
그야말로 추운 겨울 그리고 새해라는 키워드에 제대로 부합했던 만족스러운 집. 백열네 번째 먹기행으로 소개할 곳은 증산동에 위치한 백년가게 '도투리 샤브칼국수' 입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2024년 청룡의 해의 첫날 첫끼로 만난 '도투리'의 모습입니다. 개인적으론 중요합니다. 첫날의 한 끼, 뭔가 맛있기만 한다면 올 한 해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도착하니 외부에서는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예측은 되질 않았는데요.
들어가자마자 살짝 움찔했습니다. 손님이 만석이었거든요. 서울치고 한적한 동네인데, 어디서들 찾아오신 건지 내부는 샤브샤브 끓이는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이래서 내부가 보이질 않았구나. 때문인지 예상 못한 광경에 외진 동네에서 순식간에 핫한 동네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네요.
자리를 잡고 앉아 내부를 살폈습니다. 음, 그렇다고 합니다. 최근 백년가게로 선정된 모양이더군요. 필자도 마음 속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개인적으론 굉장히 잘 맞는 곳이 백년가게 선정의 집인데, 은평에서 또 하나 탄생한 셈이니 축배를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나름의 오랜 역사를 지녀야 선정 가능한 '백년가게'의 키워드. 그렇게나 오래된 집이었어? 하고 놀랐는데, 맞더군요. 과거 '향정'이라는 상호로 시작해 5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집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백년가게의 칭호에 걸맞지 않게 키오스크 주문의 방식과 깨알 설명(먹는 방법)이 함께하는 것은 재미지더군요.
도토리 전문점이니만큼 묵과 전은 꼭 먹어야 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으로 이 모든 것이 등장하는 스페셜 소고기 등심 샤브 세트를 주문한 필자입니다.
주문과 함께 등장한 샤브샤브입니다. 이야, 감탄했어요. 실로 호화스러운 자태. 호화스럽다 못해 알록달록한 색상에 찬란한 느낌마저도 들었는데요. 등장하자마자 사진 삼매경이었습니다. 이 나오는 모습도 예쁘게 담겨 나오니, 떡만 없다 뿐이지 정말 새해와는 찰떡인 샤브샤브구나 했네요.
그 안에는 도토리 반죽 기반의 만두, 색색의 은이버섯, 버섯, 채소 등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지금껏 만났던 샤브샤브 중 모습은 가장 빼어난 것 같았습니다. 자 이제 녀석은 보글보글 끓도록 놔주고 세트에 포함된 도토리 메뉴들을 먼저 만나주면 되는데요.
도토리묵무침을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봤습니다. 언제나 부담 없이 어울릴 수 있는 도토리묵. 과연, 도토리 전문점에 그 맛은 어떨지 하고 한 입 해보는데, 음. 좋았습니다. 정말 좋았어요. 군더더기가 없는 맛이더군요. 특히나, 역시나 시판 도토리묵보다는 참 깔끔하게 고소합니다. (물론 그 특유의 쌉싸름하고 떫은맛도 즐기는 필자이긴 합니다만) 간 또한 흠잡을 데가 없고 말이죠.
시작이 좋다 보니 바로 다음으로 젓가락이 바삐 움직였는데요. 다음은 도토리 반죽의 해물파전입니다. 녀석 또한 한 조각을 떠서 시식을 해보는데, 좋네요. 도토리묵에 이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맛. 이 페이스라면 메인 샤브샤브 또한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직감 또한 들었습니다.
이후 메인에 대해 의심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도토리의 혼이 담긴 선봉장들의 시원한 활약. 이때부터는 이곳을 왜 이제야 찾았는지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어요.
다음 사진은 육수에 데치다 보면 큰 임팩트 없이 넘어가는 빛 좋은 개살구와도 같은 샤브샵스의 소고기입니다. 이거 참 각 잡혀 말린 모양새 또한 샤브샤브의 모습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나요? 그래서 한 컷 담아봤습니다.
그렇게 감탄을 하다 보니 그새 육수는 끓기 시작해, 샤브샤브를 공략할 시간이 왔습니다. 탁한 빛깔의 도토리만두. 보자마자 녀석도 범상치가 않다 싶었는데, 역시였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소고기가 2순위가 될 정도의 만두입니다.
슴슴한 만두소의 구성인데 어느 정도 간이 배어 있는 맛. 설명이 어려운데 아주 취향을 저격하다 못해 육수에 투척해 버린, 그런 도토리만두였습니다. (녀석은 여분의 4알이 더 포함되는 점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도토리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요. 첨가한 도토리 반죽의 칼국수마저 맛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면 자체로 맛있단 인상을 받는 건 또 의외였는데, 도토리, 이렇게 강한 존재감의 녀석이었나? 싶을 정도였네요.
아,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물기가 서린 창문의 습기는, 단순 샤브샤브의 열기 아닌, 만나게 먹는 사람들의 열과 온기였구나. 필자도 정신없이 샤브샤브 한입 어허의 리듬에 동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샤브샤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죽입니다. 편안하게 그리고 포만감 있게 살포시 위를 적셔줄 들깨계란죽입니다. 녀석까지 더해지니 이젠 굴복. 그 나른함과 만족감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네요. 덕분인지 오후 내내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었는데, 반주가 아니었으니 다행입니다.
만족스러웠던 새해의 첫 식당, 첫 끼니의 스타트. 나른한 오후는 덤으로 고마운 식당이었습니다.그나저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곳의 존재도 모르고 증산동을 얕잡아봤네요. 앞으로, 그리고 조만간 샤브샤브는 이곳이 될 것 같습니다.
증산역 인근에 위치한 '도투리 샤브칼국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은평구 증산동의 '도투리 샤브칼국수'
- 영업시간 매일 11:00 ~ 21:00 (브레이크타임 15:00 ~ 17:00, 라스트오더 20:00)
- 주차는 가게 바로 옆으로 3대 정도 가능하나 갓길 주차로 그리 권장하진 않는다.
- 대중교통 이용 시 6호선 증산역 3번 출구에서 도보 2분가량 소요.
- 테이블식 구조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남녀 구분인지는 모르겠다.)
- 도토리 기반의 반죽 음식들로 샤브샤브를 선보이는 곳. 도토리묵, 도토리전 또한 만나볼 수 있다. 때문에 음식의 톤은 탁한 편인데, 화려한 모습의 샤브샤브가 이를 보완해 주고, 그 맛은 흠잡을 데 없이 빼어나다.
- 근래 만두 중에서는 가장 맛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평양냉면집들처럼 슴슴한 만두의 스타일이긴 한데, 적절한 간 때문일지 개인적인 입맛에는 그보다도 맛있고 굉장히 잘 맞았다.
- 칼국수의 면도 간을 하는 듯한데, 면이 맛있다란 느낌을 받기는 또 처음.
- 귀여운 이름 대비 꽤나 묵직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곳으로 백년가게로도 선정된 집인데, 과거의 상호는 '향정'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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