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107) - 은평구 불광동의 '은하식당'
일요일 저녁, 은하식당에서 느닷없이 서울 아닌 서울이었다.
주말에 우연히 접한 백종원 씨가 출연하는 유튜브, '님아, 그 시장을 가오.' 이거 참 누웠다가 벌떡 일어날 만큼 재미지고 부럽더군요. 특히나 필자가 좋아하는 지방의 특색 있는 음식들만 집중적으로 찾아다닌 방문기니 말입니다. 아주 줄기차게 감상을 했는데요.
그런데 문제는. 몇 편을 연달아 감상하다 보니 참게에, 벚굴에, 문어코까지. 서울에선 쉽사리 만나기 힘든 토속의 키워드가 필자의 마음을 간지럽히기 시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자꾸 보다 보니 나도 갔으면 하는 열망이 강하게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구요.
답답했습니다. 이거 일요일 저녁에 대뜸 서울을 탈출해 버릴 수도 없고 말이죠.(출근은 해야 하니) 그러던 중 소환하게 된 식당입니다. 꽤나 아껴두었던 카드였는데, 이곳이 있었구나 싶었지요. 결과는 대성공.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이거 서울이 맞는가? 싶더군요. 그것도 주 무대인 은평구에서라니 말이죠.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한상 차림을 구사하는 집이었는데요. 얼마 전 집필한 고독한 먹기행 스페셜이 무색하다 싶을 정도로, 은평구의 웬만한 집들은 다 아는구나라는 생각은 김칫국이었나 봅니다.
뻔하지 않은 갖가지 찬들로 서울을 이탈하고 싶은 맘을 단박에, 일시불로 해소시켜 준 집. 만나보도록 하시죠. 백일곱 번째 고독한 먹기행의 주인공. 은평구 불광동 먹자골목 외곽에 위치한 유니크한 식당. '은하식당'입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도착한, 꽤나 소박한 모습의 '은하식당'입니다. 때문에 방문 전으로 살짝 긴장을 한 필자였는데요. 오래전이긴 하지만 목표했다가 헛방을 날린 적이 있었거든요. 이번에도 이 좁은 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더군요. 하나 막상 방문하니 이 작아 보이는 식당엔 비밀스러운 아지트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좌측의 깊은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 방문하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정보입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1층에서 촬영 중인 CCTV 모니터는 지하의 홀을 촬영 중인데, 1층 대비 꽤나 넓은 편인 점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지하보단 1층. 다행히도 원하는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뭐랄까, 자리에 앉고 나서부터 묘한 기운을 느낀 필자였습니다.
이 무엇이지? 어딘가 익숙하고도 그리운 향기. 음? 하다 보니 아, 그거구나 싶더군요. 저녁 준비가 한창일 때 필자 외가댁의 부엌 향기. 서대회는 모르겠으나 간재미는 적잖이 다루는 곳이기에, 혹시 전라북도 인접한 충남 아래쪽 지역인가? 이곳 역시 필자의 외가댁과 결을 같이 하나? 그런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음식 아닌 내부의 향을 느끼자마자 이거 뭔가가 오긴 오겠다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하겠습니다.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런 확신에 바로 거침없이 주문한 필자입니다. 가오리찜으로도 자주 불리는 간재미찜 小짜를 주문. 메뉴판을 살펴보니 전반적으로 토속의 향기가 짙은 메뉴들. 확실해졌습니다. 이건 필시 전북 인접한 충남집 아니면 전라도집이란 생각이 말이죠. (물론 서대회무침으로 당연히 후자겠구나 싶었지만)
이내 등장한 기본 찬에 프로파일링은 단숨에 확실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만 해도 밀려들어오는 만족감과 황홀감. 모르겠습니다. 맛을 떠나서 보기만 해도 드는 의외의 포만감이라니. 거듭 강조하지만, 그것도 서울 은평에서 말이죠. 사진 속 찬들 때문인데, 주말 내내 틀어둔 유튜브로 인해 가득 들어찬 식욕을 해소시켜 주겠구나 라는 기대감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 딱 한 통만 하고 가자 하고 막걸리를 주문했습니다.
사진을 적당히 누락시킬 수가 없겠어요. 살펴보시죠. 언제쯤 굴을 시작해야 하나 싶어, 내내 벼르고만 있었는데. 아주 훌륭하게 적절히도 찾아와 준 선물과도 같은 싱싱한 굴무침부터.
침샘 자극하는 전라도스러움이 물씬 배어있는 김치들까지.
뿐만 아니라 칠게볶음에 피꼬막볶음, 도라지/숙주무침, 방풍나물무침, 양념게장, 표고버섯볶음까지.
기본 찬이라 부르기 미안할 정도의 손맛이 들어간 찬들이 등장해 주었습니다. 이거 뭔가, 차례로 블로그를 통해 읊어주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입니다.
확실히 흔치 않은 집이죠. 시작도 전에 기본 찬으로 소주 한 잔을 시작할 수 있는 집. 칭찬할 수밖에요.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하듯, 자리에 서서 수직샷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필자입니다.
그리고, 대망의 피날레인 간재미찜이 등장한 순간. 당시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란 사실이 원망스럽더군요.
은평구에서 만나는 진정의 전라도 한상차림, 본격적인 시식 시작입니다.
차려진 기본 찬은 물론 메인이 나오기 전부터 맛을 봤는데, 음.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썼습니다. 누가 먹어도 느낄 수 있는 개인의 손맛이 투영된 듯한 반찬의 맛. 옆테이블을 보니 국밥 한 그릇을 시켜도 동일한 찬들이 줄줄이 나오는 듯한데, 그래. 이게 성의고 정성이고 손맛이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특히나 가장 돋보이지 않을 법했던 표고볶음마저도 건새우를 갈아 넣은 것인지, 특유의 유사한 감칠맛이 아주 진하게 풍겨와 좋았습니다. 합격이요, 장원급제요. 이거 술꾼들에겐 더할 나위 없을 한상이겠습니다. 물론 칠게볶음과 피꼬막볶음 또한 말해 뭔들이었구요. 지방 여행 중에야 자주 접할 녀석들이지만 은평구 동네에서 이런 한상을 맛볼 수 있다는 점, 참으로 좋네요.
오바 조금 보태서 이 각박한 도시, 서울에 피어오르는 외가댁의 향기. 바로 한 잔 들이킨 필자입니다.
물론 메인인 간재미찜 또한 역시. 양념장 아래 듬뿍 깔린 미나리와 숙주가 참으로 매력적입니다. 향과 식감의 대장 미나리와 부드러운 팽이, 간재미 두 대장이 만나 삼합의 미를 새로이 창조하니. 은평구 연서시장과 밥집에 즐비한 가오리찜들을 단숨에 제압해 버리더군요. 식감이 심심할 수 있는 간재미에 식감을 투여해 방점을 찍었습니다.
음, 전반적으로 그러했습니다. 개별 찬들에 들어간 손맛도 손맛이지만, 재료 조합의 센스가 참 좋았다는 점. 괜히 전라도전라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마력을 뿜어내는 듯한 절기였어요.
허나, 그렇다고 해 마냥 칭찬만은 곁들일 순 없었으니, 개인적으로 느낀 유일한 단점도 있었습니다. 민감한 입맛의 소유자들이라면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 간이 강하고 전반적으로 단맛의 비중이 굉장히 진하단 점. 간이 조금 되다는 표현도 어울릴 것 같은데요. 좋은 건 좋았어도 솔직히 기술해야 진정한 맛집의 블로그니, 말미에 참 충청도인스럽긴 하지만 이 부분도 보태긴 보태야겄슈.
개인적으론 그랬습니다. 이거 진한 간재미찜에 진한 찬들을 연거푸 공략하니, 신이 나 오래 즐기고 싶었음에도 조금 이른 중반부에 갑작스런 물림이 찾아오더군요. 의외로 두 종의 김치 또한 단맛이 강하다 느껴졌는데, 녀석만은 칼칼하게 시큼한 묵은지였으면 어땠을지 하는 아쉬움.
지역의 특색일 순 있다 해도, 조금 더 순찬 찬들이 절반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기더라구요. 물론, 메인이 슴슴했다면 또 얘기가 조금 달라지긴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엔 좀 더 순한 녀석을 중앙에 배치해 보자 싶었지요.
뭐, 그렇도 오래간만에 빠르게 글로 소개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강했던 이유라면. 그래도 서울에서 한눈에 담기 힘든 녀석들도 포진된 한상도 한상이거니와, 개별 찬들에 들어간 정성 때문입니다. 막바지에 된 듯한 간과 정성이 갑작스러운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는 점에선 아쉬웠지만, 한 점 한 점 기분을 들뜨게 하는, 의외의 손님과도 같은 술안주와 음식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 말이죠. 그 부분에 마음이 더 기울게 되더라구요.
때문에, 앞으로 개성 강한 토속, 향토의 키워드가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면 동네에선 여기로 낙점. 주말 간 유튜브로 인해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감정도 해소시켜 주었고 말이죠.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과 함께 글은 마무리.
그래도 정말 좋았어. 라는 생각이 방문 후 내내 맴돌았네요. 불광동 먹자골목에 위치한 '은하식당'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은평구 불광동의 '은하식당'
- 영업시간은 식당 사전 문의 필요. (월요일이 정기 휴무라는 정보만 획득할 수 있었다.)
* 좋은 말로 유두리 있게 장사하시는 듯하더라.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가게 내부 사정으로 인해 손님이 어느 정도 들어찬 상태에서 추가 응대는 마감. 사전 문의를 해보는 것이 좋겠다.
- 주차는 불가하다.
- 대중교통 이용 시 3호선 불광역 9번 출구에서 도보 9분가량 소요.
- 테이블식 구조로 1층, 지하 1층의 홀을 구비 중 / 화장실은 외부에 위치한 듯하며 남녀 공용 같았다.
- 무직하면서도 흔치 않은 메뉴들도 메뉴들이었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본 찬. 찬 하나하나에 손맛이 있더라. 서울 일반적인 집들의 기본 찬들에 비하면 찬 아닌 메인이라 해도 될 정도. (전라도스러운 손맛이 진하게 투영된 집이다.)
- 다만, 개인적으로 느낀 유일한 단점이라면 간이 세고 단맛이 강하단 점. 필자는 메인으로 간재미찜을 시켰는데, 중반부로 다가가자 물림이 찾아왔다. 진한 김치 또한 단맛이 유독 진했는데, 유일한 단점이지 않았을까? 물론, 메인이 간이 슴슴한 음식이었다면 얘기는 조금 더 달라지겠다.
-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과 북한산 등산객들의 소중한 아지트로 보인다. 필자 또한 아재로서 한상 참여하긴 했으나, 이거 언제인가 SNS 상에 퍼지지 않을까란 생각도. 아재들이 꿋꿋하게 방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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