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의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일찍 기상해야 했기에 끼니는 가볍게 때우고 아마 새벽 5시쯤. 그린델발트역의 첫 기차에 올랐다.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차와 버스로 국경을 넘는다라. 유럽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맞닿은 국가들을 어렵지 않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 스위스의 기차에서도 이대로 종점에 다다르면 베를린이 나온다는 게 꽤나 인상에 남았다.

이탈리아에서도 첫 목적지는 패션의 도시라는 밀라노.
기차만으로도 4시간 반에서 경로에 따라 5시간 이상 걸리는 만큼 시간 확보가 필요했기에 일찍부터 이동해야 했다.

떠나면서는 마지막 스위스의 풍경을 눈에 담는 시간. 그리고 이때 처음 목격하게 된다.

저 멀리 해가 비추는 스위스 빙하 봉우리를 말이다.
하필 떠나는 날 차창밖으로 이 아름다운 풍경을 빼꼼 보여주다니, 얄밉고도 야속하다. 이동하면서 짧게지만 눈에 담았다. 정말 해가 비치면 눈덮인 하얀 봉우리에서 황금빛이 나는구나. 신묘하고도 절묘한 광경이었다.
스위스 기차 속에서의 마지막 영화, 여전히 장르는 풍경.

먼저 스피츠, 브리그역에서 한 번씩 환승한 뒤 이태리 국경 부근인 도모도솔라역까지 기차로 가야했다.
그리고 도모도솔라역에서 밀라노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탑승해야 했다.
가장 통상적이라는 순수 기차의 이동 코스는 이용할 수 없었는데, 기억에 반년 전의 당시는 공사로 인해 일부 주요 철길이 막혀있었다. 필자의 경로로는 뺑 둘러가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모도솔라에서 버스를 경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는 여행 전 미리 기차들을 예약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상시 갖은 변수가 생긴다는 유럽의 기차와 그곳의 상황. 이는 정말로 그렇다. 때문에 사전 조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연착과 같은 갑작스런 변수는 생기기 마련. 어떻게든 해결은 되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즐기시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겠다.

사진은 환승을 위해 내린 브리그에서 촬영한 사진. 추정에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흘러내려 봉우리는 암석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는데, 뭔가 기분이 그랬다.

그렇게 또 환승을 거듭하며 흘러가는 기차의 몸을 맡겼을까? 분위기가 정말 달라졌다.
국경은 어느 순간 이미 넘었겠으나 이 지점에서부터가 우리의 두 번째 나라. 엄밀히 따지자면 여기서부터가 이탈리아다. 도모노솔라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기차로 오는데 약 3시간이 소요되었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주변을 살피는데,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된다. 뭔가 스위스와는 자연도 사람도. 그 온도와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날이섰던 것도 사실.

그럼에도 바로 파니니 샌드위치는 찾아 허기를 때웠다. 역 내 식당 겸 편의점을 찾아 구매했는데, 필자는 심심했으나 연인은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비공식적인 이태리의 첫 끼다.
이후 역 근처 정류장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대기한 뒤 버스를 탑승했어야 하는데, 웬걸. 자리 2개가 빈다고 예매 시각과 무관하게 바로 버스를 태워버렸다. 강제로 탑승 당했다 봐도 될 정도의 박력이었다.
뭐 덕분에 갑작스러운 시간 단축. 정말 사람도 다르구나. 스위스가 차갑고 경계가 명확한 느낌이었다면, 도모도솔라를 기준으로 이태리는 얼렁뚱땅. 좋게 말하면 유두리가 있는 곳이었다. (20년 전의 우리나라와도 많이 닮은 듯한) 다만 다른 점이라면 버스 기사님 뿐. 격투기 선수일지 모를 건장한 체중의 상남자 스타일이었는데 운전도 상당히 와일드했다.
덕분에 밀라노까지 미리 예상했던 시간도 꽤 단축시킬 수 있었다. (약 6시간 소요)
이 지점부터 긴장을 머금고 새로운 국가의 새로운 도시에서 숙소를 찾아 짐을 풀기 위한 여정이었으니. 짐도 많아 사진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밀라노 첸트랄레역 부근의 숙소 사진으로 바로 이동. 어떻게 짐을 이고 땀 뻘뻘 흘리며 도착했다.
이건 꽤 신기해서 남겼다. 영화에서나 보던 엘리베이터. 수동 조작의 엘리베이터다. 꼭 범인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갑작스럽게 총성이 울릴 것 같은 긴장감의 엘리베이터.
밀라노에서 묵는 숙소의 엘리베이터였는데, 이탈리아 대부분이 이랬던 것 같다. 여하튼 안내해 주는 호텔 직원도 역시 이탈리아. 무더운 날씨임에도 베스트까지 껴입고는 레이디 퍼스트 에스코트의 자세가 범상치 않았다. 정말 나 이탈리아에 있구나 또 한 번 실감했다.

짐과 긴장을 훌훌 털어내고 숙소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드디어 유럽의 지하철도 탑승. 첫 번째 목적지는 필자의 선택이었는데.

바로 AC 밀란의 근거지. 산 시로 스타디움 방문이었다. 특별히 해외 축구광이라던지 하는 건 아닌데, 그냥 한 번쯤은 유럽의 축구장, 그곳에서의 전리품을 획득해 보고 싶었기에 이탈리아의 첫 코스로 낙점. 그런데 이상했다. 그래도 전 세계인들이 아는 축구장의 근처인데 이리도 휑한 것인가? 상암동 보다도 휑했다.

엄청난 규모의 경기장에 비해서도 한산 그 자체. 스위스와는 다른 쨍한 해, 그리고 피할 곳 없는 개활지로 걷는데도 한참이고 힘이 좀 부쳤다. 그리고 근처까지 걷다가 이거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다. 개최 예정인 공연으로 경기장도 문을 닫은 것. 이는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기에 씁쓸히 발길을 돌렸다. 산 시로 스타디움은 정말 스타디움만 보고 왔다.
그리고 급격히 찾아온 허기. 바로 두 번째 목적지인 두오모역에서 끼니 먼저 해결하기로.
밀라노 대성당과 갤러리아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가 다음이자 이탈리아 첫날의 주요 코스다. 다시 지하철에 탑승했고 어렵지 않게 중심부 두오모역 도착.

여기서부터가 공식적인 이탈리아의 첫 끼니다.
점심으로 무엇이 좋을까 지하철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다 튀어나온 소재가 한국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밀라노의 스폰티니 조각 피자다. 그곳의 앤쵸비 피자가 심장을 찌르르 강렬히 파고들었고.
2024.08.10 - [해외/이탈리아] - (이탈리아/밀라노) 포카치아식 피자, '스폰티니' 현지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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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스폰티니의 앤쵸비와 풍기(버섯) 포카치아 피자를 만나게 된다.
상세한 내용은 위의 글을 참고, 끝내줬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탈리아가 시작되는 듯했다. 맘마미아.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관광 시작. 스위스에서는 느낄 수 없던 차원이 다른 건축의 미와 웅장함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 크게 쇼핑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감상할 뿐. 그럼에도 충분하고, 그러면 충분했다.


중앙으로 이동하면 영화 웡카에서도 본적이 있는 아치의 지붕이 나온다. 저기로 욕심 많은 사장님들이 두둥실 떠올랐었지. 바닥을 남기지 못해 아쉬웠는데, 촘촘히 모자이크 처리가 된 돌바닥이다. 사방팔방이 그냥 예술. 건축에 진심이란 나라. 시작부터가 압권이다.

충분히 구경을 즐긴 후 당이 당겨 이태리의 젤라또도 섭취해 보기로 한다. 줄이 긴 가게 하나가 보여 동참했는데, 이건 두오모 광장에서 맛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나오니 이태리 광장의 진풍경을 맛볼 수 있었는데, 무덥고 무더웠다. 구름의 거의, 그리고 이태리 여행 중 내내 없었다. 스위스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습기 하나 남길 것 같지 않은 바싹 타들어가는 날씨. 그래도 좋을 수밖에.


맑은 하늘을 그렇게 염웠했고, 밀라노 대성당과 함께 즐긴 첫 이탈리아의 젤라또였으니까. 스위스는 자연 경관이 인상적이었다면, 이탈리아는 인간이 쌓아올린 건축물이 진한 감흥을 내뿜는다. 사람이 근사한 풍경을 창조해 냈다.
그게 너무 화려하고 웅장하니 원래 태초부터 그곳에 있던 자연 그 자체 같았다.

고딕의 성당을 감상하고 이곳은 직접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첨탑 부근으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보였는데, 고소공포증이 있긴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언제 또 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말이다.
성당 우측으로 현장 구매처가 마련되어 있어 티켓을 구매했다. 대신 입장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어 조금 더 광장에서 기다려야 한다.

들어가자마자 압도를 당해 말이 나오지 않는 광경.
큰 규모의 성당 내 뻗은 기둥과 높이감이 경건하게 만든다. 종교적인 치유보단 인간이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 느끼게 해주는, 신의 존재를 증빙하려는 듯한 건축 같았다. 나를 찬양하라 이런.


단순한 건축물의 창도 이곳에선 예술을 불어 넣고 있었으니,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와이드뷰로 촬영해 본 내부의 모습이다.
이제 성당 위의 지붕, 옥상을 올라갈 차례였는데, 올라가는 방법은 티켓 구매 시 선택이 가능했던 걸로 기억한다. 무더위에 계단으로 올라가는 건 무리가 있겠다 싶어 엘리베이터를 택했고, 이는 성당 외부 좌측으로 돌아가면 탈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또 다시 대기 시간이 소요. 재미난 건 엘리베이터 가이들 또한 보디가드처럼 쫙 빼입은 상태였단 점.

올라왔다. 광장의 인파를 내려다 볼 수 있는데 조금 무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오르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그리고 멀찌감치서 바라보던 뾰족한 첩탑들을 눈앞에서 직관하니, 다시 한 번 이탈리아의 건축은 까마득하단 생각을 했다. 글로는 표현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내려와 덥고도 더워 잠시간 어느 간이 테라스펍에서 유식. 상가 내 어느 매장에서 야외로도 카페 공간을 운영 중인 것 같았다.

잉크누사와 나쵸로 목을 좀 달랬더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 그렇게 광장에서 스위스에선 볼 수 없던 가지각색의 사람들과 인파를 구경했고.
이동으로도 피로감이 달해 있었고 다음 날도 도시를 이동할 예정이었기에, 숙소로 복귀하기로 결정했다. 늦은 저녁 근처의 펍이나 들를까도 싶었으나, 밤엔 첸트랄레 역 주변으로 치안이 좋지 않단 소릴 들었기에 장만 보고 복귀. 확실히 체감하긴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느낌적으로 좋지 않은 분위기의 사람들이 자주 보였다. 이는 주의하시면 좋겠다.

복귀 전으로 마트를 방문. 스위스에는 쿱마트가 있다면 이탈리아엔 팜 로컬, 코나드 등을 도시마다 만날 수 있었는데. 밀라노에선 팜 로컬이 가장 가까웠기에 아직 코나드는 만나기 전이다. 그곳에서 구매한 소소한 저녁 거리들. 게다가 역시 와인의 나라답게 마트인지 와인 가게인지 헷갈릴 정도였는데, 그 값도 저렴해 주류도 빠질 수 없었다.


아란치니, 내내 자주 즐겼던 납작복숭아와 함께 와인 한 잔.

그리고 이쯤부터 격하게 친해진 이태리의 친구 페로니.
그리 과음을 한 건 아닌데 너무 피곤한 나머지 거실 쇼파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몇 시간만에 나라가 바뀌고, 웅장함을 담고, 음식과 인파를 만나고. 오감이 자극을 받는 하루였다. 그래 그 표현이 적절하다.
설레는 지침으로 가득했던 이탈리아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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