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내일은 선물과 같이 맑은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잠에 들었건만 무거운 구름은 좀처럼 자리를 뜰 것 같지 않았다. 전날의 구름이 그다음 날에도 아이거 북벽에 머물러 있는 것도 같았다.
결국 스위스의 대표적인 코스 중 하나인 마테호른도 과감하게 포기를 결정했다. 실시간 웹캠으로 확인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노홍철 형님과 맞바꾼 스위스의 날씨.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확률적으로 보자면 아주 맑은 날의 마테호른을 마주할 확률보다도 낮은 걸 경험한 셈이지 않은가? 우리의 결혼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무조건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이치다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결과론적인 정의를 내리면 그나마의 위안은 보태진다.
대안은 있었기에 우선 이날은 조식부터 즐기기로. 알펜호프의 숙소를 한 바퀴 둘러보며 식당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로비로 들어오자 식당의 문 건너로 아주 나지막이 들리는 식기를 정비하는 소리. 내부엔 책을 보는 두 명의 이탈리아인과 우리가 전부였기에 굉장히 고요했던 것도 같다.
호텔의 내부만큼이나 식당의 분위기도 조식도 마음에 들었던 그린델발트의 알펜호프.
보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의 글을 참고해 주시면 되겠다.
2024.12.10 - [해외/스위스] - (스위스/그린델발트) 샬레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조식, ‘알펜호프’ 호텔
(스위스/그린델발트) 샬레에서 즐기는 알프스의 조식, ‘알펜호프’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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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테호른을 포기하고 찾은 곳은 스위스의 베른이라는 도시였다. 선정의 이유라면 꼭 가고 싶었다기 보단, 이날의 스위스에서는 베른이 가장 날씨가 좋을 것으로 예측되었기 때문. 즉, 좋은 날씨의 동네를 부러 찾아간 것이다. 기차로 인터라켄에서 1회만 환승하면 되는데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별 수 없는 차선책이라지만 도착하자마자 훌륭한 선택이었다 생각이 들었으니.
익히 듣긴 했으나 정말로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도시가 베른이었다. 베른역에서 내리고 구시가지를 걷는 순간의 누구나가 그리 느꼈으리라. 거리를 누비는 빨간 트램도, 스위스의 국기들도 기억에 남아있고, 촘촘히 길을 내어주는 것도 같은 아케이드 구조의 건물. 강렬하다.
그렇게 필수 코스인 베른의 구시가지를 걷고 걸었을까?
베른 죄수의 탑
죄수의 탑이 한 차례 웅장함을 뽐내고.
베른 구시가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또 한 블록 멀리로 보이는 베른의 랜드마크 시계탑. 치트글로게 시계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다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는 아케이드의 구조. 볼 수가 없으니 뜬구름만 같던 건축의 용어였는데, 직접 눈으로 그 의미를 담았다. 여기서부터 길의 끝자락 같은 곰공원까지가 건물 위를 지붕 삼아 일직선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복합적인 상업 공간이다.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치트글로게 시계탑
걷기만 해도 아름다울 수 있나? 걷다가 마주한 치트글로게 시계탑이다. 이곳을 걸으면서 유럽 도심, 건축의 매력을 직격으로 받아들인 것도 같다.
그렇게 베른 대성당으로 다시 또 향하려는데, 찾아온 허기.
슈니첼 샌드위치가 유명한 집이 하나 있다길래 방문을 했고. 샌드위치 하나씩을 포장해 성당 앞에서 즐기기로 했다.
자세한 슈니첼 샌드위치에 대한 글은 아래의 글을 참고.
2024.12.08 - [해외/스위스] - (스위스/베른) 치킨 슈니첼 샌드위치와 베른 대성당, ‘홀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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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 대성당
드디어 처음으로 마주한 유럽의 대성당. 세계사 시간에나 듣던 고딕 양식을 처음 접한 순간이기도 했으니. 압도당했다. 들어가 잠시간 머물다 기도를 하고 나오기도 했고, 베른이란 도시를 추억하기 위한 마그넷도 하나를 구매했다.
구매한 슈니첼 샌드위치. 뭔가 쭉쭉 뻗은 베른 대성당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자 이제까진 베른 구시가지 도심의 건축들을 눈에 담았다면, 여기서부터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게 되는데, 바로 아레강과 어우러진 베른 도심의 모습. SNS 상에서 수영으로 물살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는 비현실적인 에메랄드 빛 색상의 그 강이다.
마음이 정화가 된다. 어지러운 것들이 이 순간만큼은 없어지고 관계없는 것들이 되어버렸다.
나도 저 창문 몇 개의 주인이고 싶다. 아레강과 어우러진 건물들. 경험이 미비하지만 현재까지의 모든 곳을 통틀어 도시가 아름다움 자체인 곳은 베른이 유일무이. 구름이 낀 날씨인데도 맑은 날인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도시가 청명한 날씨 그 자체다.
구도심을 걷다가 강물이 통하는 지점에서 만날 수 있는 곰 공원이다. 이곳도 잠시 들려줬는데, 상당히 큰 규모.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 살고 있는 곰들을 눈에 담을 수가 있다. 베른이란 도시 이름의 어원 자체가 곰에게서 왔다고도 한다. 곰이 상징인 도시이기도 하다.
다시 구시가지를 통과해 베른역으로 향할 시간. 잠시 베른의 맥주 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대단한 걸 많이 한 것 같진 않은데. 눈에 담은 것들이 아름다워 정말 많이도 한 기분. 이 날 베른의 선택은 정말 좋았다 생각했다.
돌아가는 길로는 반대편 상점가를 구경하며 베른역으로 향했는데, 마주친 레더라 초콜릿. 구매한 것은 하나 없이 구경만 하다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여행 초반부라 여유를 부린 것일까? 또 만날지 어떨지 모를 소재를 그렇게 두고 사진으로만 담고 나왔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도시 방문으로 하루 일정을 여유 있게 소화해 냈고.
그린델발트의 알펜호프로 복귀했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날씨. 그린델발트의 마지막 밤이기도 하고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하루이기도 했는데, 바로 다음 날은 메인 일정인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는 날.
뭐랄까 날씨의 운이 따라주지 않아 다이내믹한 광경을 목격한 것은 적었지만 필자에게, 연인에게 스위스는 치유였다. 일정이 타이트하지 않아도, 기차 안에서 창밖의 브리엔츠 호수만 봐도 마음이 정화가 되고, 꿈같은 누군가와도 만날 수 있었던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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