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71)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의 '청화집'
기다란 순대처럼 이어져온 역사는, 참 국밥 국물처럼 뜨겁게 가슴을 적셔주더라.
대전과 그리 멀지 않은 탓으로 어린 시절부터 익히 알고 지냈던 천안의 명물, 바로 병천순대입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이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간 천안 어느 곳에서 정말 맛있게 순대를 접했던 경험인데요. 기억에 장터 곳곳에서 순대를 판매 중이었는데, 바로 병천(倂川=아우내)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병천순대와의 인연을 갖고 있어서일까요? 필자에겐 분식의 당면순대(찹쌀 순대)와 병천순대 사이에는 엄격한 선이 확실히 구분 지어져 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대전 일대의 순댓국집들을 보면 대부분 병천식 순대가 주를 이루는데, 때문인지 당면순대가 들어간 순댓국은 영 점수를 쳐주기 쉽지 않더군요.
유별날 수도 있겠으나, 우연히 시킨 순댓국에 순대가 당면 순대라면 시작부터 초를 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꽤나 병천순대를 추앙(?)하는 필자다 보니 앞설이 길어졌네요. 일흔한 번째 먹기행의 주인공, 바로 현지의 병천순대입니다. 병천 현지에서 만나는 순대와 순댓국. '청화집' 방문 후기를 만나보도록 하시죠.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대전에 들렀다가 서울로 복귀하는 길로 들린 필자입니다. 천안하면 딱 서울과 대전의 중간. 필자에겐 그런 개념으로 자리 잡혀있는 곳이 바로 천안인데요. 주말, 이 작은 동네에 병천순대를 향한 관심은 매우 뜨겁더군요. 아우내순대길 곳곳의 가게에 줄들이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그만큼 유명 맛집들이 밀집해 있다는 것인데, 필자의 선택은 바로 저 '청화집'이었죠. 굳이 선택한 이유라면 근 100년이란 역사도 역사지만, 상호가 뭔가 꽂히더라구요.
웨이팅을 참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부러 이곳을 경유해 방문했으니 끝줄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먹기행을 자주 일삼다 보니 이젠 확실히 알 것 같네요. 소위 유명집으로 불리는 곳들의 주말 웨이팅은 필수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외관을 구경하니, 당연하겠지만 '백년가게'더군요. 어찌 보면 무수한 백년가게들 중 진정한 백년가게가 아닐까 싶네요. 기원을 오르고 오르고 오르면, 1930년부터 비롯되었다니 말이죠.
오래간만에 오래 기다렸습니다. 30분 정도 뒤에 입장했네요. 평일은 아니겠지만 주말의 경우 점심 핫타임의 공세가 꽤나 무서운 집이었습니다. 이는 순대거리 전반이 그러했는데 '박순자아우내순대', 맞은편의 '충남집순대'까지 동일했구요.
자, 메뉴판으로 시선을 옮겨보겠습니다. 깜빡했네요. 이곳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 바로 저 순대 반 접시의 존재 때문입니다. 먹기행을 집필하며 느낀 것인데, 반 정도 짜리 메뉴의 존재유무가 은근히 선택에 영향을 많이 끼치더라구요. 흡사 '필동면옥'의 제육 반 접시처럼, 메인에 또 다른 걸 하나 더 더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니 말이죠. (물론 '필동면옥'의 가격은 만만치 않지만요.)
국밥 2인과 함께 모듬순대 반 접시를 주문한 필자입니다.
순대 반 접시부터 등장했습니다. 보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순대 한 알 한 알이 참 범상치 않더군요. 먼저가 크기요, 둘째가 꽉 찬 속 때문이었는데요. 이거 실하단 표현, 여기에 참 어울리겠습니다.
병천순대답게 피의 비중이 진한 순대. 바로 한 입을 털어 넣은 필자인데요. 크, 단번에 느낀 점인데, 굉장히 부드러웠습니다. 입에서 녹는 듯 퍼지는 맛. 큼직하게 들어갔는데, 마치 그 크기를 즉시 소멸시켜 버리는 듯한, 패시브 스킬을 제거한 듯한 그런 부드러움이었어요.
역시는 역시네요. 선지의 비중이 높은 진한 순대 소의 맛. 서울에서 파는 병천순대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건 단순히 피와 채소 함량보다도 훨씬 진하다는 것. (서울에서 요 정도의 진한 맛을 느끼고 싶다면, 필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동대문구 용두동의 '와가리피순대'겠습니다.)
거기에 보시다시피 머릿고기와 내장이 함께 하는데, 반 접시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넉넉합니다. 과연 이 가게에서 이어져오고 있다는 넉넉함. 시장에서 비롯된 기조가 아닐까 싶은데, 정말 순대만으로 충분히 전해진 필자입니다.
그렇게 순댓국도 등장해 줬는데요. 아, 인상 깊게 접한 순대와 달리 순댓국은 필자 개인의 취향엔 조금 아쉽습니다. 미세한 잡내에도 취약한,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이들은 또 모르겠네요. 허나 제겐 너무나 심플한 느낌이었어요. 취향 탓이라 하겠습니다. (대전 '천리집'의 깔끔한 국밥과도 유사합니다.)
그래도 역시. 순대 반 접시와 마찬가지로 구성물은 굉장히 실하더군요. 특히나 오소리 등의 내장 가득이 아닌 고기 순댓국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도 좋을 것 같구요. 병천순대도 꽤나 많이 들어가 있는데, 그래도 이는 쪼그라들어 원형의 맛을 그대로 느끼긴 어려우니, 반 접시는 별도로 맛보시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변치 않는 저의 순댓국 1순위는 대전의 '천복순대국밥'인가 봅니다. 그렇게 다대기와 들깨를 첨가해 마무리한 필자인데요. 익숙한 파다대기가 아닌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도 느낀 건 역시나 순대하면 병천이구나 하는 인상.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집 줄에도 동참해 봐야겠군요.
그나저나 이 작은 동네 아우내거리. 과거엔 큰 장이 들어섰었고, 유관순 할머니가 만세 운동을 하셨었다지요. 1930년 아우내장터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명맥이 이어오고 있는 집이니, 이거 참 제대로 된 역사의 산증인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필자입니다.
정말 구수함으로는 손에 꼽는 우리나라 음식 중 하나이지만, 기다란 순대처럼 이어져온 역사는 국밥 국물처럼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더군요. 순대에서 이런 감성을 느낄 줄이야.
본 고장에서 만난 병천순대, 100년의 역사 '청화집'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의 '청화집'
- 영업시간 평일 09:00 ~ 18:00 (주말은 08:00부터 시작) / 매주 월요일 정기휴무
* 지도 앱 상의 정보와 다른데, 가게 앞에 붙어있는 정보를 기반으로 기술.
- 주차는 가게 앞으로 딱 4대의 공간. 사진과 같이 늘어선 줄의 인파, 더불어 사거리 초입에 위치해 있어, 주말 점심의 가게 앞은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 때문에 필자의 경우 조금 골목을 진입해 한적한 공터 옆 갓길로 주차.
- 웨이팅이 존재한다. (주말 점심 기준으로 30분의 웨이팅 후 입장. 번호표 없이 줄을 선대로 입장하는 방식.)
-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테이블식 구조 / 화장실은 내부에 위치 (반 분리형으로 남녀 공용)
- 역사적으로는 순대 거리에서 제일 쳐주는 집인 듯하다.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약 100년.
- 모듬순대 반 접시가 가능하다는 점이 꽤나 큰 이점. (양도 상당하다. 반 접시만 먹어도 포만감이 상당한데, 남으면 포장도 가능.)
- 마찬가지로 순댓국에 들어간 순대들도 양이 상당한 편. 국물은 잡내 없이 굉장히 깔끔한 스타일. 필자의 취향엔 맞지 않았다. (내장순댓국보단 고기순댓국에 가까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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