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136) - 용산구 남영동의 '털보집'
최근 유행이었던 쓰저씨의 기운을 받아 방문하게 된 집입니다. 용산 출신인 김석훈 씨가 방송에서 '창성옥'과 함께 이곳을 추천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론 좋은 기억이 있던 곳을 ('창성옥'의 뼈 전골) 추천하기도 해 서로 입맛이 통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 내내 궁금했던 음식이기도 했었기에 찾아가 봤는데요. 지리적 특성에서 기인했다 할 수 있는 음식, 용산 군부대 인근의 모듬스테이크입니다.
결론부터 미리 기술하자면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재료들의 조합도 조합이거니와 소고기가 들어가 있다곤 해도 가성비로는 한참을 못 미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나마 필자보단 아주 먼 세대들의 추억의 음식 정도가 아닐는지?
그래도 지리적인 특성으로 파생된 서울의 이 독특한 음식. 궁금해할 이들도 있을 테니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두며 시작해 보겠습니다. 백서른여섯 번째 고독한 먹기행으로 소개할 곳은 숙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부대찌개, 스테이크 구이집, 50년 전통의 '털보집'입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요새 참 오락가락하죠? 참으로 무더운 날씨였네요. 남산도성길에서 시작해 오로지 두 다리에만 의존해 해방촌을 경유하고 만난 '털보집'입니다.
방문하자마자 외관에 대한 그 임팩트는 강렬했는데요. 이유를 글로 기술하긴 어려우나 그냥 강렬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상세한 검증 및 정보 없이 오로지 오래 전의 호기심으로 찾은 집이기에, 이 타이밍엔 제법 기대를 했던 것 같네요.
늦은 점심의 내부입니다. 음, 분위기로만 보자면 제 기준엔 합격입니다. 그윽하네요. 확실히 곳곳에서 세월의 흔적이 배인 냄새가 납니다.
더불어 당신은 지금 용산에 있다란 기분을 절로 들게 해주는 내부였는데요. 각종 수입제 소스류가 그러했고, 벽면의 정체 모를 권총과 탄 또한 그러했어요. 뭐랄까, 마치 미군부대와 세월을 함께 한 산증인이다란 걸 어필하는 듯한 느낌이었네요.
거기에 메뉴판마저 '전 품목 USA'를 표방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말이 안 되는 소리일 수 있으나 사진 속의 털보아저씨도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구사하실 것만 같은 교포의 느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분위기에 취하기도 잠시. 주문을 하려는데 목표했던 녀석이 눈에 들어오네요.
부대찌개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의 송탄식에 이어 용산식을 만나보는 것도 좋긴 하지.' 했으나 그래도 내내 궁금했던 건 미군부대식 모듬스테이크. 흔히 아는 스테이크가 아닌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 맛이 궁금했고, 경험에 의미가 있었으니. 中짜로 감행했습니다.
으음? 시작부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케첩양배추와 겨자소스 먼저 등장. 여기서 약간 역시 USA... 로 기울었다가.
나머지 찬들마저 세팅되니 다시 히얼 이즈 코리아가 되었습니다. 찬들의 구성은 깊다 하디고, 얕다 하기엔 오락가락하는 부분이 있어 판단이 어렵네요.
그리고 드디어 말로만 전해 듣던 모듬스테이크도 등장했습니다. 스팸햄, 카보트소세지, 베이컨, 살치살 등. 약 이 4종의 육류가 버섯, 가지, 양파, 마늘, 고추(?)와 함께 소스에 끼얹어진 모양새인데, 음. 이거 막상 직접 마주하니 살짝 혼란스럽더군요. 설명이 어려우나 꾸밈없는 날 것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고 할까요?
곧장 복작복작 끓여주고 은박을 뒤적뒤적하니 뭐 어느 정도 윤기 흐르는 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타이밍에 바로 한 입 해봤습니다.
음, 필자가 느낀 그대로를 표현해 보자면 '예측대로의 맛'이었습니다. 재료들에 스테이크 소스를 더해 볶은 맛. 아, 그래서 날 것의 느낌이 난다는 생각을 했나 봅니다.
소스나 양념 등에 깊은 맛이 있다기보단, 식재료들에 강한 맛의 소스를 그대로 버무린 맛이기 때문에 말이죠. 양도 양이었지만 이 지점부터 뭔가 가성비가 급격하게 추락하는 느낌을 받지 않았나도 싶어요.
물론, 그 옛날의 그 세대들에겐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음식이었을 수는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햄도 귀했을 당시였을 텐데 미제, 게다가 독특했을 풍미의 소스 볶음이었을 테니 말이죠. 가만 생각해 보면 필자가 나고 자라던 어린 시절의 상회에서도 스테이크 소스라는 품목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 보다 힘들었을 그 시절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될 순 있겠다. 딱 그 생각을 하던 때, 노년의 어르신 두 분이 들어와 익숙하게 모듬스테이크를 주문하셨습니다. 그래, 그런 것으로.
맛은 익숙할 수 있다 쳐도, 확실히 요즘의 세대들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구성이기에 호불호가 상당할 수 있다 느꼈던 '털보집'.
조금은 변화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면서도, 혹여나 그 옛날 그대로의 구성을 뚝심 있게 오래간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면? 이란 생각을 하니 더 어려워지네요. 그래서 혼란스러웠나 봅니다.
참 그나저나, 음식에서 쓴맛을 느끼더라도 이런 후기를 느끼는 것이 마냥 좋아 매번 도전을 해대는 필자이니, 큰일은 큰일입니다.용산의 '털보집'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용산구 남영동의 '털보집'
- 영업시간 매일 10:00 ~ 22:00
- 주차는 불가해 보인다.
- 대중교통 이용 시 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도보 3분 정도 소요.
- 테이블식 구조 / 화장실은 외부로 추정 (가보진 않아 모르겠다.)
- 미군부대 인근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파생된 부대찌개(전골), 모듬스테이크(미제햄 소고기 구이)를 다루는 곳.
- 50년가량 된 집으로 역사적으로는 꽤나 의미가 있는 집.
- 상호의 장본인인 털보 아저씨는 계시지 않아 사진으로만 만나볼 수 있었다. 가족분께서 이어서 운영 중이신 모양.
- 맛으로만 보자면 요즘 세대들에겐 꽤나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만한 햄구이라 보기엔 소고기가 들어간 탓인지 가격이 세고, 구성과 깊이감이 약하다. 뭔가 추억의 음식 정도이지 않나 싶은데, 추억에 딱 머무른 정도이다 보니 먹거리가 많은 요즘엔 굳이? 란 생각을 들게 할 수도.
- 메뉴판엔 '전 품목 USA'란 재미난 구절도 접할 수 있었으나, 음. 오히려 햄이라도 구성이 좀 더 다양했으면 보기라도 좋지 않았을까?
- 모듬스테이크는 딱 그 시절 추억의 음식이란 결론. 때문에 노년의 어르신들이 종종 추억으로 찾는 것도 같다. (때문에 방문하신다면 부대전골을 추천하고 싶다.)
- 서비스적인 측면에서도 조금 아리송했던 부분이 있었다.
- 용산의 '창성옥'으로 통했던 쓰저씨(김석훈 씨). 살짝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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