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184) - 은평구 역촌동의 ‘어연어’
이런 집이 진짜 달인의 집 같다.
최근 연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일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연인이 선전포고를 하듯 언젠가 방문해 주겠다는 말을 약 열 번쯤은 들었던 것 같네요. 그때마다 스윽 보고는 너무도 포장 특화된 모습의 식당이라 ‘괜찮으려나?’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코로나의 여파로 우후죽순 생겨난 배달 전문의 집들과 비슷하게 느꼈기 때문인가 봅니다. (무엇을 하는지 베일에 싸인 모습의 배달 전용 점포들은 썩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글로 소개한다는 것만으로도 직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이제야 찾은 것인지, 기대 이상의 숨은 맛집이었으니까요. 대로변 아닌 좁은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은 동네 사람이 아니면 쉽게 찾을 수 없는 조그마한 점포인데요. 이거 등잔 밑이 어둡다 아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일반 횟집의 모듬 구성보다도 빼어난 숙성회와 해산물을 다룹니다. 전반적인 구성물, 사소한 찬들에서도 잔잔한 알력이 느껴지고 말이죠. 진정 유일한 단점이라면 배달 및 포장 픽업만 가능하단 점인데, 얄미우실 수 있지만 필자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데는 동네 친화형 식당이라 표현하곤 합니다. 여하튼 간 추운 겨울 시작에 만난 회덮밥집, ‘어연어’를 이번 백여든네 번째 고독한 먹기행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포장을 위해 찾은 ‘어연어’입니다. 방문은 두 번째였는데요. 처음 마주할 때랑 느낌이 달랐습니다. 이미 첫 만남 당시 강렬한 내공을 느껴서일까요?
정말 많이 지나친 이 도로변의 작은 집. 방문 전으론 낮에 그저 그렇게만 봤었는데, 이날은 간판에 살짝 압도당한 느낌이었습니다. 세 개의 이응이 여기 괜찮다며 필자를 노려보는 것도 같았고 말이죠. 살아가며 대충 겉만 보고는 섣불리 판단하면 아니 될 이유입니다. 아직도 난 간사하구나.
내부는 외부에서 부는 것과 같이 한눈에 담길 정도로 아담합니다.
과거엔 홀에서도 테이블 장사를 두어 개 정도 운영하셨다는데, 현재는 오로지 포장만 가능하다 하네요. 좁은 내부에 여간 불편해하셨다고 합니다. 그저 포장 주문 픽업 시 잠시 머무는 대기의 공간이라 봐도 되는데, 첫 방문 당시 깔끔한 내부를 보고 이 시점부터 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로지 배달만 주문하는 은평 주민들을 위해 이 집만의 메뉴판과 폰트도 담아줬습니다. 글씨도 간판의 폰트와 닮은 것이 귀엽네요. 가니미소구이라니, 이건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일식 메뉴판을 보자면 우리에겐 흔치 않은 단어가 조합이 된 음식들이 참 설레가 만듭니다.
카이센동 1인분
(구성은 조금씩 변동이 있는 듯하다. 단새우, 전복, 연어 연어다짐, 참치 뱃살, 방어, 참돔, 가리비 관자, 계란 등의 구성)
그렇게 주문한 카이센동을 픽업하고 다리는 헐레벌떡 손은 조심인 상태로 들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1인분에 2만 9천 원인데요. 이 한 팩에 가득 담긴 녀석들을 한 점 한 점 맛보다 보면, 정량을 추구하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겐 오마카세가 따로 없습니다.
올겨울은 소방어만 만난 상태였기에 기름진 방어를 위한 방어도 소량 주문했구요. 첫 주문 당시와 같이 안키모(아귀의 간)도 추가했습니다.
갑작스럽게 거실이 아늑한 모듬 횟집이 되었네요. 가끔은 이런 따뜻한 주말도 좋습니다.
첫 주문 당시의 사진도 더해보겠습니다. 한 한 달 전쯤 같은데, 전주에서 공수해 온 이강주와 한상 차림입니다. 주류 또한 조합이 좋으니, 아귀의 간처럼 아주 그냥 이날 밤은 녹아내렸습니다.
이날은 방어에 조금 포커싱이 맞춰졌습니다. 기름진 대방어를 때에 맞게 적당히 즐겼는데, 이마저도 충분하고 좋네요. 초대리밥은 살짝 빼두고 조미김과 함께 마끼처럼 때론 초밥, 또는 김밥처럼 횟감을 곁들여 이렇게 저렇게 즐겼습니다. (방어를 추가하신다면 조미김 몇 개는 더 추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문득, 메뉴판 제일 하단에 적혀있던 오차즈케는 연어다짐만 넣고 뜨거운 찻물을 부어주면 되는 건가? 생각했는데, 아. 다짐육의 후리가케도 그렇고 되겠구나. 다음엔 카니미소구이와 함께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함께 포장된 된장국 또한 은은하고 진한 것이 맛이 좋았거든요.
그저 숙성회의 식감, 싱싱함 이 정도로밖에 표현이 되질 않으니 사진을 주력으로 소개한 ‘어연어’였습니다. 이 정도면 횟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맛이었고, 이번 주문에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매장 벽면에 붙은 사진들을 보고 추측하니 여사장님 쪽이 꽤나 일식에 몸을 담고 계신 것 같은데, 동글동글한 간판과 글씨의 매력만큼이나 카이센동 또한 필자의 마음으로 떼구루루 굴러왔다 하겠습니다.
그저 왜 이제까지 찾지 않았을까 하는 집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자주 찾을 생각입니다.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연어처럼 이곳도 더 큰 무대로 진출할 수 있다 하셨는데, 천천히 갔으면 좋겠네요.
은평구 역촌동에 위치한 숨은 일식 회덮밥집, ‘어연어’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은평구 역촌동의 ‘어연어’
- 영업시간 15:00 ~ 23:50 (라스트오더 23:40, 주말은 12시부터) / 매주 월화 정기휴무
- 카이센동을 시키며 느꼈다. 일반적인 횟집보다도 나은 회덮밥집이라고. (알게 되니 횟집을 갈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 매장 내 취식은 불가하며 포장 픽업 또는 배달만 가능
- 카이센동, 사케동 등의 숙성 회덮밥과 사이드 메뉴들을 선보이는 일식당. 가장 최근 인상 깊었던 맛집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숙성회의 맛도 맛이지만 녹진하고 고소한 안키모(물론, 시판일 수 있으나), 그 외적인 구성들, 포장 방문 당시의 단순 응대까지도 마음에 들었던 집이다.
- 카이센동은 정량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1인분도 벅찰 수 있을 양이다. (회 몇 점을 추가하니 필자와 연인은 내내 술안주로 즐겨도 될 충분한 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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