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먹기행 (91) - 은평구 역촌동의 '이상향'
번화가 아닌 동네여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하는 집들이 꼭 하나씩 있기 마련이죠. '세련된'이라는 키워드는 조금 어울리진 않는 것 같은데, 그래 '유니크'란 독보적인 느낌의 키워드가 더 잘 어울리겠습니다. 대학생활 중 자취방 앞에서 야키소바와 나폴리탄을 파는 작은 평수의 퓨전 이자카야가 그러했었는데, 누군가 근처에 온다면 한 번쯤 데려갈 의향이 있는 필자만의 장소였습니다.
이곳도 약간 그러한 결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극상의 음식점보단 분위기 있는 퓨전 중식에 가깝다 생각되는 곳이기에 음식 아닌, 외관의 사진을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흡사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영사기처럼 떠올리게 하는 외부의 모습 말이죠.
아흔한 번째 먹기행의 주인공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말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식당. 역촌동에 위치한 퓨전 중식당 '이상향'입니다.
※ 상세한 매장의 요약 정보는 본 게시글 최하단에 정리해 두었으니, 시간이 촉박한 분들은 요약 정보만 참고 부탁드립니다. ※
먼저 이곳에서 맛보았던 독특한 메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유자 파우더가 뿌려진 과일 크림이 곁들여진 상큼 달콤한 조합의 찍먹 크림새우입니다. 탄탄면과 함께 크림새우를 주문한 필자인데요. 생크림이 깔린 크림새우라니, 이거 익히 알던 녀석과는 달라 생소하더군요. 당시엔 거의 다 먹고 오니 올라오는 느끼함은 어쩔 수 없어 아쉽긴 했지만, 신기하게 요즘 들어서 묘하게 이 녀석의 맛이 종종 떠오르곤 하는 매력적인 맛입니다.
처음엔 당황스럽다가도 오묘한 그 조화에 자꾸 손이 갔었는데, 퓨전 중식과는 확실히 어울리는 신묘한 맛이라 해두겠습니다.
그래도 베이스는 엄연히 중식. 내부 인테리어만 봐도 분위기를 중시 여기는 곳 같으니, 당연히 없으면 섭할 자차이 무침도 등장. 잔만 하얼빈이지만 하얼빈 맥주도 있구요. 고량주와 함께 안주 삼기 좋은 중식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입니다. 탄탄멘은 국물 가득, 듬뿍 스타일. 장의 맛이 더욱 강했으면 했는데, 부드러운 스타일의 탄탄면이라 조금 아쉽더군요.
색다른 조합의 크림새우를 빼면 전반적으로 음식은 무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럼에도 지인이 몸소 동네를 찾아온다면 이곳을 데려가고 싶은 이유.
바로 이 기가 막힌 분위기 때문입니다. 들어오자마자 필자는 대만의 향수에 취했고, 연인은 홍콩의 향기에 취했는데요. 술 한잔을 하기도 전에 분위기에 취하더군요. 전반적으로 레드, 그린 칼라의 계열이 통일감 있게 적시적소에 색을 놓고 있는데요. 습기 찬 창문 위로 놓인 빼갈병들 또한 색감에 추가적인 수를 놓아줍니다.
동경하는 세계, 사막의 오아시스, 당신의 취미(?) 이상향. 필기 입력기를 조금 거쳐서 분석해 보았었습니다. 외관에 붙어있던 야자수 이미지와 통하는 글귀지요. 참, 은평구 역촌동에 이런 개성이 짙게 서린 분위기의 집이 있을 줄이야. 절친한 지인과의 자리에선 음식보단 이야기와 분위기에 취하니, 식당에서 머무는 내내 꼭 한 번 누군가를 데리고 와봐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 한 가지 굉장히 아쉬웠던 점이라면 음악의 선곡. 운이 따라주질 못한 건지,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건지 흘러나오는 노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는데, 등려군의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그래도 이 정도의 분위기라면야. 뜬금없을 순 있지만 은평구 역촌동에서 '중경삼림', '아비정전'의 색감과 톤을 느낄 수 있는 곳. 퓨전 중식과 취기를 가미해 주는 분위기는 덤입니다.
역촌동의 퓨전 중식 펍, '이상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은평구 역촌동의 '이상향'
- 영업시간 17:00 ~ 24:00 /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 금, 토의 경우 01:00까지
- 주차는 불가하다 보는 것이 맞겠다.
- 테이블식 구조 (안쪽 벽면의 4인 테이블을 붙여 단체로도 찾는 듯하다.)
- 화장실은 외부에 위치로 추정 (가보진 않았다.)
- 퓨전 중식답게 크림새우 또한 일반적이지 않은 과일 맛을 담은 생크림이 곁들여 나온다.
- 데이트 또는 지인과의 만남의 장소로 좋을 듯한 매력적인 현지풍의 인테리어. 빨강과 초록 위주의 색감, 주방이 보이는 실내 유리, 외관의 갈색 벽돌까지 더해져 참으로 분위기가 멋지다.
- 방문 당시 90년대의 국내 음악이 주를 이뤘는데, 개인적으로 선곡은 조금 아쉽다는 생각.
'서울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평구/응암1동) 오로지 두부로만 승부, '이김순두부'의 얼큰 순두부와 코다리찜 (3) | 2023.10.28 |
---|---|
(동대문구/제기동) 매운 쭈꾸미 세계관 최강자, '나정순할매쭈꾸미 2호점'의 쭈꾸미볶음 (0) | 2023.10.25 |
(은평구/대조동) 인생이 담긴 옛날토스트 노포, '25년 전통 옛날토스트' (2) | 2023.10.17 |
(은평구/녹번동) 맑게 시작해 스며드는 감자탕 아닌 감자국, '서부감자국'의 우거지감자국 小짜 (2) | 2023.10.16 |
(은평구/갈현동) 직접 칼로 썬 도톰한 삼겹살, '싸리골'의 생삼겹과 구수한 된장찌개 (3) | 2023.09.30 |